HOME > 학과활동 > 언론보도
제목 은행나무의 수난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한혜정 명예교수, 2014.10.21)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15-04-07 16:54:34

[조한혜정칼럼] 은행나무의 수난

 

얼마 전 서울시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은행 암나무 가로수를 뽑고 수나무를 심으려 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수나무는 열매가 없어, 악취도 없습니다. 서울시는 오는 10월까지 은행나무 암나무의 위치를 파악한 뒤 11월부터 본격적인 교체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길 지나다닐 때 너무 냄새가 심하게 나요. (은행 열매를) 빨리 털어내든지 아니면 없앴으면 좋겠어요.” 은행 열매를 밟으면 고약한 냄새가 나 외국인들에게 부끄럽다거나 열매를 따는 사람들 때문에 교통사고 위험이 있다는 민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민원에 그간 서울시나 각 자치구에서는 은행 열매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 미리 모아서 중금속 검사를 마친 뒤 복지관 등에 기증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인력과 장비에 한계가 있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암나무를 수나무로 전격 교체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민원을 이렇게 조속히 해결하는 지자체들이 고맙긴 하지만 어딘지 너무 관료적이고 폭력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는 은행나무를 보면서 우리는 약간의 쓸쓸함과 함께 겨울 맞을 준비를 한다. 은행나무는 벌레가 생기지 않아서 가로수로 적절하고, 또 마늘밭에 이파리를 뿌려두면 벌레가 생기지 않아 유용하고 몸에 좋은 약재 열매를 맺기에 사랑을 받아왔다. 또 천년을 가는 나무이면서 암수가 따로 있어 ‘점잖은 존재’라고 자고로 향교나 사당에서 즐겨 심은 나무였다고 한다. 마을이나 거리 곳곳에 버티고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는 있는 듯 없는 듯 그곳의 풍광이자 버팀목으로 그곳 주민들의 삶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 감정을 가진 존재인 사람들은 자기 동네에 있는 오래된 나무의 존재를 은연중에 든든하게 느끼며 살아간다. 

 

은행나무의 수난시대는 광화문 거리를 그득히 메웠던 은행나무 가로수가 사라지고 콘크리트 광장이 들어선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가로수야 원래 사람이 심은 것이라 다른 나무를 심을 수도 있지만 오래된 나무들을 뽑지 않고도 광장을 새롭게 단장할 묘안을 찾아내기 위해 충분히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았을까? 마구 밀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섬세하고 슬기롭게 문제를 풀어가면 좋을 터인데 그런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은 왤까? 열매를 줍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기에 적절한 수거함을 두면 행인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을 수확에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동네 초중학교 학생들이 방과 후나 특별 활동으로 열매를 줍는 가을걷이를 해도 좋고, 중금속 검사를 직접 하게 하는 것도 흥미로운 실험이 될 것이다. 은행 열매를 복지관 어른들에게 전달하면서 은행의 효능에 대해서도 배우는 등 이런저런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기 동네를 둘러보며 시민의식을 키워낼 것이다. 은행나무 건은 그렇게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풀어갈 문화적이고 생태적인 과제이지 군사작전 하듯 일사불란하게 처리하는 일은 아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적어도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은 선진국 국민/시민으로서 이제는 좀 차원을 높여 창의적으로 이런 문제를 풀어가야 하지 않나 싶다. 

 

나는 감정이 섬세한 사람도 아니고 나무를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 오히려 도구적 이성이 발달한 사람이지만 수나무만 심어서 불편을 없애겠다는 우리 안의 무의식이 정말이지 염려스럽다.  

 

이 작은 사안에서 나는 생명과 사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극단적 사물주의와 개발논리를 본다. 삶 자체가 때론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운 것인데 그 모든 것을 깔끔하게 처리해버리고 싶어 하는 무의식이 걱정된다. 거대한 4대강 사업이 국토에 가한 폭력은 이런 무의식적 강박과 닿아 있을 것이다. 가로수는 가로수가 있는 동네에서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롭게 풀어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은행 열매가 열릴 즈음에 나는 독특한 향과 낙엽을 반기고 잘 거두어 보내는 어른과 아이들이 있는 그런 마을, 그런 도시, 그런 나라에 살고 싶다. 생명과 삶에 대한 감각을 되살릴 때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 

 

*기사원문링크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60848.html)


이전글 ‘적대의 국민’과 ‘환대의 시민’ 사이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한혜정 명예교...
다음글 음유시인 신해철님을 보내며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한혜정 명예교수, 2014.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