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제목
박사 2013 : 권수현 : 제도화 과정에서 나타난 돌봄 노동의 성격에 관한 연구: 성별화된 관계 노동 특성을 중심으로
작성일
2022.03.29
작성자
문화인류학과
게시글 내용

제도화 과정에서 나타난 돌봄 노동의 성격에 관한 연구: 성별화된 관계 노동 특성을 중심으로 

  

  주제어 

 돌봄의 제도화, 돌봄의 여성화, 신자유주의 복지 상품화, 성별화된 관계 노동, 돌봄 노동, 소외된 노동, 성적 침해 

  

초록 

본 논문은 사적 영역에서 주로 여성에 의해 수행되었던 돌봄 노동이 공적 영역으로 이전되었을 때 나타나는 특성을 환자, 장애인, 노인 등 성인 대상 돌봄 제공자의 경험과 관점을 통해 분석한 연구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돌봄 수혜자의 성적 표현에 대한 돌봄 노동자의 경험 세계를 돌봄 제도화 과정에서 나타난 성별화된 관계 노동 특성을 중심으로 규명함으로써, 돌봄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의 성격 및 그 사회적 맥락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질적 연구 방법을 채택하여, 공공 영역 및 시장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돌봄 노동자 및 파견기관의 중간관리자에 대한 심층 면접을 실시하였고, 노인요양시설 및 재가 돌봄 노동 과정, 요양보호사 자격증 교육과정에 대해 참여관찰을 하였다. 본 논문의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돌봄 노동은 육체노동, 정신노동, 감정노동 간의 구분이 모호한 복합적이고 상호의존적인 노동이며, 돌봄을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에 교환되는 정서가 매우 중요한 관계 노동이다. 우리나라에서 돌봄의 제도화는 이와 같은 돌봄 노동의 특성을 간과한 채 돌봄을 상품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특히 2000년대 후반 도입된 정부의 돌봄 정책은 돌봄 일자리가 확산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는데, 그 특징은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돌봄에 대한 관리와 책임을 민간 영역으로 민영화하는 ‘신자유주의적 복지 상품화’이다. 경제 논리와 도덕적 문화 정치가 결합된 독특한 제도화 과정에서, 유급 돌봄은 여성 집중적인 저임금, 미숙련, 하향 가치화된 일자리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제도화 현실 

    속에서 돌봄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 조건, 돌봄 수혜자와의 위계적 관계, 고용 불안 등으로 인해 적대적 노동 환경을 해소할 통로를 갖지 못한 채 신체적, 정신적 중노동을 수행하면서 각종 직업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돌봄 노동은 돌봄 노동자와 돌봄 수혜자 사이에 일상적인 신체적, 정서적 접촉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돌봄 노동자에게는 돌봄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긴장과 갈등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돌봄 노동자들은 성역할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사적 노동과 직업적 거리두기를 요구하는 공적 노동의 성격이 혼재된 방식으로 관계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돌봄 노동자가 수행하는 성별화된 관계 노동은 돌봄 노동자들은 돌봄 수혜자를 ‘내 가족’처럼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는 유사 가족 프레임, 직업적으로 지위 보호막 역할을 해 주는 탈성화 프레임, ‘봉사정신’, ‘효’와 같은 무급 노동을 이상화한 도덕적 프레임 등이 혼재된 감정 노동의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성격의 돌봄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돌봄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을 비인간적이고 소외된 것으로 경험하게 되며, 다양한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직업적 위험에 대한 보호로부터 배제되는 경험, 자신의 노동을 ‘노예 노동’으로 인식하게 되는 경험, 돌봄 제공 과정에서 조우하게 되는 다양한 행위자들로부터 모욕과 비하의 경험, 돌봄의 윤리와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경험, ‘직업인’이 아니라 ‘여자’로 간주되는 경험, 성적 침해의 경험 등이 그것이다. 이는 돌봄의 위기가 주로 직접 돌봄 노동자의 값싼 노동력과 신체적, 감정적 자원에 

    의존하여 해결되면서, 호혜적이어야 할 돌봄 관계는 오히려 위계화 혹은 비인간화되고, 돌봄 노동자의 몸, 감정, 인격은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동원되는 자원으로 대상화되고 사유화된 탓이다.본 논문에서 돌봄 노동자의 경험 세계를 ‘소외된 노동’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양상 때문이다. 돌봄 노동에 나타나는 독특한 소외의 양상은 돌봄 노동자의 고통과 딜레마가 여성적 자질에 의해 정당화되고 은폐된다는 점, 돌봄 노동자의 감정적 자원 및 희생정신이 물신화되고 있다는 점, 다른 사람을 돌보면서 정작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자원을 희생하게 되는 역설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적대적인 노동 환경 속에서 돌봄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는 점 등이다. 돌봄 노동자가 돌봄 수혜자의 성적 표현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것은 보편적 현상인데, 그것은 돌봄 노동 과정에는 돌봄 수혜자와의 잦은 정서적, 신체적 접촉이 수반되며, 돌봄의 대상이 인지력이 저하되어 있거나 의존적인 성인 환자, 노인,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피해’의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데는 돌봄 노동자들이 관련 지식이나 정보를 통해 숙련의 기회를 갖지 못한 점, 유사 가족 프레임, 탈성화 프레임, 봉사정신이라는 도덕적 프레임 등 그 어떠한 노동 규범으로도 자신이 겪고 있는 감정적 고통을 읽어낼 수 없다는 점, 불안정한 고용 환경 속에서 그러한 고통은 조직적으로 은폐되거나 외면당하게 된다는 점 등이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시장 질서를 통해 이뤄진 돌봄의 제도화 속에서 돌봄 노동의 특성, 가치, 의미가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식되거나 평가되지 않은 채, 중장년층 여성이 급격히 돌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예비군’으로서 동원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본 논문은 ‘신자유주의적 복지 상품화’라는 독특한 제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별화된 관계 노동으로서 돌봄 노동의 성격을 규명하였다는 점, 그리고 돌봄 수혜자의 성적 표현으로 인해 돌봄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이 이러한 제도화 과정에서 초래된 노동 소외의 일부임을 규명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단순히 돌봄 노동자의 노동 조건 개선이나 시장 구조의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돌봄의 개념 및 가치와 관련된 새로운 사회적 논의가 요청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돌봄 노동자가 경험하는 성적 침해 및 노동 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가 돌봄을 하나의 공적 윤리로 채택하여, 돌봄 노동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그 가치를 존중받는 사회, 즉 돌봄 사회(caring society)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본 논문이 우리 사회에서 돌봄 개념을 둘러싼 쟁점들에 대한 근본적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