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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석사 2014 : 이유림 : 정서적 고통의 의미와 우울의 사회적 구성 : 20대 '명문대' 여성의 정서적 고통과 우울증 경험에 대한 분석
작성일
2022.03.29
작성자
문화인류학과
게시글 내용

정서적 고통의 의미와 우울의 사회적 구성 : 20대 '명문대' 여성의 정서적 고통과 우울증 경험에 대한 분석 


주제: 우울, 우울증, 20대 명문대 여성, 질병 서사, 사회적 고통, 포스트 페미니즘 

  

이 논문은 한국의 소위 '명문대'를 거친 20대 여성의 정서적 고통과 우울증 경험을 분석한 연구이다. 연구는 연구 참여자들의 우울증 경험을 고도의 경쟁 사회에서 나타나는 시대적인 경험이자 젠더적 현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또한 개인의 행위성을 포착함으로써 정서적 고통의 주관적 경험과 의료/의학적 지식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에 주목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20대가 사회경제적으로 삶의 안정성을 도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명문대'라는 학력자본과 끊임없는 자기계발로 성취한 스펙을 갖추고 있다면 경쟁사회 안에서도 그나마 유리한 선택지를 확보할 수 있다. 경제적 효용의 극대화를 위한 능력주의사회로의 재편은 '능력'을 토대로 자신을 증명하고 사회적인 성취를 획득하는 진취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이는 가부장적 규범과 구조적인 성차별을 '자조'로 극복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경쟁 사회의 자조적 삶의 요청은 삶의 제문제諸問題를 사사화하고 개인을 타인과 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 

이 연구를 위해 2013년 7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총 11명의 연구 참여자를 심층면접 하였으며 최종적으로 참여한 연구 참여자는 9명이다. 연구 참여자들은 깊은 우울, 우울증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정신과 방문 경험, 항우울제 복용 경험, 상담 치료, 수년 간의 정신과 상담 치료와 약물 복용, 입원 치료 등을 하기도 했다. 

본 논문을 통해 밝힌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구 참여자들의 '마음 앓이'는 자아를 사회로 확장하고, 자신이 놓여진 사회구조적인 맥락을 객관화하는 성찰적인 요소를 포함한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에 입학하며 우울을 자각한다. 훈육과 학습을 통한 청소년기의 경쟁규범의 내면화는 감정관리를 포함한다. 교육 경쟁에서의 성취를 위해서는 몰아적으로 자신을 구성하는 것이 요청되나 대학 입시의 성취 이후에는 이러한 감정 관리의 강제가 다소 약화된다. 연구 참여자들의 우울은 계속되는 경쟁에서 의 소진, 자신의 계급성에 대한 자각과 무한 경쟁 각본에 대한 간파, 가족안에서 경험된 도구적 가족주의의 경험을 담고 있다. 이러한 고민은 자아를 사회로 확장시키는 과정이자 성찰적인 요소가 실재한다. 우울의 내용은 성찰적인 어른 되기의 가능성 을 담고 있으며, 이들의 감정적인 무력 유보의 상태는 경쟁과 자기계발의 규범으로 부터 우연적인 이탈의 시간을 확보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연구 참여자들의 마음 앓이가 질병으로서 우울증과 만나는 경로는 한국 사회에서 우울증이 개인의 고통을 설득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문화적 수단임을 드러낸다. 

둘째, 연구 참여자들은 우울증에 대한 의학적인 개입과 치료의 과정에서 부분적인 행위성을 통해 의료 및 의학의 지식과 협상한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통되는 정보에 의지하여 소비자 환자로서 의사와 병원을 선택한다. 타인의 정서적인 고통을 조롱하는 태도, 3분 진료 후 약을 처방하는 치료는 의료인으로서 직업적인 윤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들은 의사에 대해 자신이 돈을 내고 구매하는 일종의 상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조언해 줄 수 있는 멘토를 생각하기도 한다. 우울증의 원인과 치료에 대한 단선적인 의학의 설명과 약물 치료에 대한 믿음은 개인이 경험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고통 경험과 충돌한다. 이들은 개별의 맥 락에 따라 의학적인 설명 모델을 차용하거나 거부하며 자기정의적인 우울증 고안하여 자신의 정서적인 고통의 고유성을 확보한다.  

셋째, 명문대를 거친 20대 여성의 우울 경험의 기저에는 자발적인 노력과 성실에 대한 배신이 있다. 능력주의 사회 안에서 여성의 자조적 성공 서사는 이들을 남성 중심적인 구조에 대항 할 수 없도록 포획한다. 노력과 성실이 사회적 보상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망하지만, 가족의 기대 사회적 촉망 개인의 욕망이 뒤얽힌 구조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또한 내면화된 자조의 방식에 의지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이 연구는 20대 명문대 여성의 우울증 경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들이 경험하는 정서적인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질문한다. 또한 우울증 경험은 정서적인 고통에 대한 사회의 지배적인 인식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인다. 우울을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의학적인 개입의 권위를 전적으로 인정하는 사회에서 이들의 마음 앓이는 성찰적인 어른되기의 과정이 될 수 없다. 

궁극적으로 연구는 고통을 다루는 사회의 문화적인 양식이 우울과 정서적 고통의 경험을 특정한 방식으로 주조하고 있음을 밝힌다. 또한 정서적인 고통은 성찰의 경험 이나 반성적 자아 구성의 경험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통해 한국 사회 안에서의 고통의 의미와 지위에 문제제기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