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뉴 닫기

 
제목
석사 2020 : 김보영 : 여성의 성매개감염 경험이 제기하는 성적 권리의 문제: HPV를 중심으로
작성일
2022.03.29
작성자
문화인류학과
게시글 내용
초록

  이 연구는 HPV(Human Papillomavirus, 인유두종 바이러스) 감염 진단 및 예방 실천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어떠한 건강상의 위험과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성적 자율성 및 신체적·정서적 안정이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 HPV 감염으로 인한 고통이 가중되는 양상에 주목한다.
우선 HPV의 발견과 HPV 백신의 보급 과정에서 이루어진 자궁경부암 담론의 변화를 추적한다. HPV는 주로 성관계를 통해 감염되는 가장 흔한 성매개감염 바이러스이고, 자궁경부암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HPV와 자궁경부암 사이의 연관성이 발견되고 이를 측정할 수 있는 검진 체계가 발달함에 따라 자궁경부암의 의미는 변화해왔는데, HPV 감염이 자궁경부암의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의학적 지식의 형성은 감염의 예방과 조기발견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특히 HPV 백신의 개발 이후 백신 접종을 통해 감염을 줄이는 것이 국가 보건 정책의 핵심적인 목표로 등장하기도 했다. HPV 검진과 백신 접종이 일반화되는 상황에서 HPV가 여성건강의 위험 요소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HPV 감염을 경험한 여성들이 HPV 감염을 위험으로 경험하는 이유는 자궁경부암의 가능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때 위험은 HPV 감염이 일어난, 혹은 일어났다고 추정되는 관계에서의 문제와도 깊이 연루되어 있었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이성애 관계에 주목하였는데, HPV에 감염된 여성들은 감염을 계기로 자기 삶의 여러 경험을 새롭게 해석하게 되었다. 여성들은 ‘내가 왜 감염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시도 속에서 자신의 성적 권리가 침해되었던 상황을 발견하게 되었다.
HPV 감염을 경험한 여성들은 HPV 백신 접종이 여성에게만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 남성과의 성관계에서 콘돔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상황, 성교육의 부재 등을 지적하며 자신이 HPV 감염이라는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성적 권리의 침해와 HPV의 감염을 연결 짓는 것이다. 이러한 침해의 인식은 성매개감염의 경험이 단순히 감염의 확산뿐 아니라 개별의 권리 감각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HPV 감염은 무엇보다도 몸 안에서 바이러스를 완전히 몰아낼 수 없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불안을 초래했고, 사회적 낙인이나 불평등한 관계로 인해 불안은 더욱 가중되었다.
연구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이 HPV 감염을 통해 단순히 건강상의 위험이 아니라 성적 권리의 침해를 말한다는 것이다. 성적 자율성이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지, 타인과 어떻게 평등한 관계를 맺으면서 성적 쾌락을 누릴 수 있는지, 이 과정에서 어떻게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지의 문제는 성매개감염 경험이 제기하는 중요한 문제들이다. 결과적으로 이 연구는 HPV를 비롯한 성매개감염의 문제가 성적 권리의 문제와 맞닿아 있고, 성 건강을 위해서는 성적 권리의 충분한 보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