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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박사 2020 : 최시현 : 한국 중산층여성의 주택실천과 '투기화된 삶'
작성일
2022.03.29
작성자
문화인류학과
게시글 내용
초록

  본 논문은 한국 도시 중산층 여성들의 주거생애사를 페미니즘 관점으로 해석하여 한국 투기적 주택실천의 장이 젠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밝힌다. 중산층 가족경제에서 주택실천은 가족의 물적 기반을 제공하는 주요 기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해 온 비공식 사적 활동이나 자녀교육을 위한 부차적 활동으로 해석되어왔다. 여성들은 자신이 행한 주택실천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이를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기반한 본질적이고 자연스러운 행위로 이해해왔다. 본 논문은 젠더 불평등의 결과로서 한국 중산층의 주택실천이 젠더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중산층 여성들의 주택실천이 국가발전주의와 가부장적 가족주의와 결합하면서 젠더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밝힌다. 또한 자가소유와 지속적인 주택매매를 통해 계급 지위를 확인하는 불안정한 삶의 양상을 ‘투기화된 삶’이라 정의하였으며, 여성이 투기 주체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사회문화적 요인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제기한다.
본 연구는 지난 30년간의 한국 주택 정책의 통치적 성격을 분석하기 위해 이론 및 문헌조사를 수행했고, 2017년 1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총 36명의 연구참여자와의 심층면접을 진행하여 이들의 주거이력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연구참여자들은 대부분 대졸 학력의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자가소유자로서 40대에서 70대 사이의 중산층 여성이다. 연구 참여자의 주택실천이 갖는 다층적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이들의 ‘주거기획’, ‘주거이동’과 ‘주거경험’을 포함한 주거 생애사 자료를 바탕으로 ‘투기화된 삶’을 구성하는 조건을 분석했다.
본 연구의 구체적인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도시 중산층 여성의 주택실천은 젠더화된 노동으로서, 주택열망과 주택장(housing field) 형성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한국 사회에서 주택장은 발전주의 국가 주택정책과 제도적 가족주의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1980년대 이후 주택소유로 인한 편익 분배가 사회위기의 주요인으로 지적되면서 1980년대 후반 한국의 주택 정책은 부동산 대책으로 변화하였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특정 지역 중심의 대규모 아파트 건설과 신도시 개발 등을 통해 주택의 상품화를 강화하고 ‘내 집 마련’ 뿐만 아니라, ‘좋은 집주소’ 얻기, ‘다주택자 되기’가 갖는 사회경제적 위상을 구축하는데 일조하였다. 이를 통해 부동산을 통한 자산증식은 중산층 계급형성 및 계급재생산의 주요 기제가 되었다.
탐욕스런 ‘복부인’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연구 참여자들 중 일부는 높은 학력자본과 문화자본을 가진 커리어 여성이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보장하는 안정적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전통적으로 여성의 노동소득은 가족경제에서 부차적 역할을 할 뿐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자신의 경제적 생산성과 유능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자산소득을 획득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들이 자산소득에 대해 갖는 부담감은 경력 단절을 경험하고 전업주부가 되는 상황에서 더욱 강화된다. 여성들은 주택가격의 상승률이 임금상승률을 훌쩍 뛰어넘는 상황에서 주택 매매와 자산증식이라는 적극적 행위를 통해서만 계급 상승과 유지가 가능하다고 믿게 된다. 연구참여자들은 무모한 투기꾼에 머물기 보다는 법, 행정, 금융 관련 지식을 꾸준히 습득하는 자기계발 주체로서 주택 실천을 합리적으로 수행하고자 한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주택 관련 금융제도가 늘어나고 금융 시장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관련 전문 지식의 습득은 중요한 문화자본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주택실천에 요구되는 복합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부동산 시장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투자감각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축적했던 학력, 경력, 그리고 사회자본을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연구참여자들은 법의 테두리를 넘나들며 불법과 탈세를 편법과 절세로 위장하는 ‘투기장’에 참여하게 된다. 고용불안정성과 경력단절을 특징을 하는 젠더 불평등한 노동시장과 임금 소득을 뛰어넘거나 보충하는 부동산 투자를 중산층 가족의 ‘여성의 일’로 간주하는 젠더 관념은 여성의 주택 실천을 ‘젠더화된 노동’으로 구성해낸다.
둘째, 여성의 주택실천 양상은 개인이 놓인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며 투기를 내면화시키는 신자유주의 통치성에 이들이 순응 및 저항하는 방식 또한 상이하다. 중산층 여성의 주택 실천은 가족주의적 모성, 신자유주의적 투자자 주체성, 그리고 성찰적 행위자성 등의 차이를 보여준다.
일부 연구참여자들의 투기적 주택실천은 모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들은 집을 사고파는 일의 원동력이 어머니 정체성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특히 모성가치는 이 여성들에게 투기가 결과적으로 도덕적이며 올바른 일이라는 자체평가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진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고되지만 보람된 것, 그리고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이다. 모성실천은 사회적으로 여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행위다. 그리고 자신이 평생을 바쳐 수행한 어머니 노릇이 가치 있었음을 인정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자녀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연구 참여자들은 자식들이 독립할 때 번듯한 집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것에 자괴감을 갖는다. 가족주의적 모성 규범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식에게 집 한 채 마련해준 여성은 좋은 어머니로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여성들을 무능하다고 자책하게 만든다.
집은 복지의 최소 조건이지만, 집값이 폭등하고 주택금융화가 일반화되면서 자녀 세대 복지에서 자가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이 때문에 중산층 여성들의 투기적 주택실천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특히 남편의 직장 은퇴 후 ‘실질적 가장’으로서 여성들의 지위는 더욱 강화되고, 여성들은 보조적 자산관리자 위치에서 벗어나 직접 주택매매를 결정하고 가족경제 전반을 기획한다. 모성이 주된 원동력으로 작용하지만 투기적 주택실천에 나선 여성들은 신자유주의적 투자 주체라는 점에서 무조건적 희생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어머니노릇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가족주의적 모성 규범이 주는 압력과 함께 기업가적 주체를 강조하는 투기적 주택장에서 중산층 여성들의 주택실천은 가족의 주거안정을 추구하는 행위인 동시에 가족 안에서 자신의 권력을 확보하는 전략적 행위다. 또한 일부 연구참여자들은 국가가 나와 내 가족의 미래를 보장해줄리 없다는 불신을 바탕으로 국가 복지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으며, 가족들의 미래를 내 손으로 준비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자산 확보를 자신의 존재근거로 삼고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최적화된 형태로 적응했다는 여성들의 자부심은 신자유주의적 모성실천이 주택실천과 결합해서 빚어진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일부 연구참여자들은 주택실천장의 속성이 투기이며 그것이 주는 ‘이익’과 ‘재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만 정치적 이유에서 거리두기했다.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은 가족주의적 모성규범과 신자유주의 통치성에 순응하지 않고자 했으며, 내면화된 주택열망으로부터 벗어나 자율적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 절제와 성찰을 추구했다.
셋째, 본 논문은 ‘투기화된 삶’이라는 개념을 통해 중산층 여성이 느끼는 만성화된 삶의 불안정성과 끊임없는 주거 이동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다. 본 연구에서 ‘투기화된 삶’이란 투기적 주택실천이 만들어 낸 감각과 규범성이 투기자본을 내면화한 삶의 양상을 의미한다. 투기라는 규범이 내면화된 주체는 자가소유만으로 장기적 주거안정은 어렵다고 여기거나 시세차익을 계속해서 추구해야만 중산층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획을 갖는다. ‘투기화된 삶’의 양상은 주택매매로 높은 수익을 얻은 이들이 자가소유로 주거가 안정되었음에도 투기의 수익구조를 이해한 후 시세차익이 더 높은 집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주거이동을 기획하고 집 사고팔기를 되풀이하며 불안정한 주택실천을 이어나가게 한다. 반면에 투기를 통한 시세차익 얻기에 실패한 경우 꾸준한 집값 상승을 지켜보며 투기장에 재진입해야만 중산층 지위경쟁에서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절박함에 시달리는 것 또한 ‘투기화된 삶’의 단면이다. 이처럼 ‘투기화된 삶’은 주거문제에서 비롯된 불안정성 때문에 삶 전반에 대한 감각 자체를 손익계산으로 집중시킨다. 또한 주거안정보다 부동산 자산증식에 의미부여를 하며 정주하지 않는 이들의 주택실천은 삶의 불안정성을 재강화하는 동시에 물적기반으로서 주택이 가진 복합적 위상을 극대화한다.
여성들은 주택실천으로 획득한 부가가치를 통해 가족의 계급을 공고화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이들은 성인자녀의 독립을 기획하면서 부동산 투기화와 과도한 경쟁체제가 사회적 문제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 성찰은 정치적 실천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모순을 갖는다. 높아진 주택가격으로 인해 성인자녀에게 놓인 ’내 집 마련‘의 불가능성과 삶의 불안정성이 클수록 더 많은 경제적 자원을 물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투기 행위를 멈추는 순간 경제적 손해를 본다는 투기적 주택장의 속성은 여성들이 국가의 규제정책에 의해 자신들의 자산에 손실이 생긴다는 감각을 갖게 하며 이는 부동산 자산을 지키기 위한 ’방어‘논리로 연결된다. 일부 여성들은 자산으로 얻은 이익은 반드시 개인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자산 지키기”에 골몰한다. 이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관성 없이 달라지는 주택정책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주택투기 욕망을 정당화하며 계급이해관계를 공고화하는 정치적 보수화로 나아간다.
이상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본 연구는 주택실천을 통한 한국 중산층 형성 및 재생산의 핵심 기제가 가부장적 가족주의 규범과 노동시장에서의 젠더불평등이라는 점을 경험연구를 통해 규명했다. 또한 투기적 주택장의 공모적 관계와 투기 아비투스의 형성과정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중산층의 주택열망과 자가소유가 이들의 속성이 아닌 특정한 젠더 관계 속에서 구성되고 재생산되는 것임을 밝혔다. 주택투기장에서 여성의 젠더화된 노동과 자산증식이 여성의 공적 임파워먼트로 이어지기보다 여성을 가족 안으로 재위치시키고 중산층의 정치적 보수화로 흡수하는 구조를 드러냄으로서 본 연구는 여성들이 자기 역할에 대한 자율적 정의를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한국의 강력한 가부장적 가족주의와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에 대한 여성주의적 문제제기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