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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석사 2022 탁수연 무상생리대 사업의 젠더정치: ‘생리빈곤’을 통한 여성청소년 문제의 재구성과 선택적 개입 = Gender Politics of Sanitary Pad Distribution Programs : R
작성일
2022.03.29
작성자
문화인류학과
게시글 내용

본 논문은 2016년 ‘깔창생리대’ 사건 이후 정부와 민간의 무상생리대 사업이 어떻게 ‘여성청소년 문제’를 재구성하고 선택적인 개입을 제도화, 상품화해왔는지를 분석한다. ‘깔창생리대’ 사건은 사실상 그 당사자의 존재나 사실여부 등의 실체가 불분명한 사건이었다. 이는 국내 주요 생리대 제조업체인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가격 인상 계획 발표에 대한 논란이 일던 가운데 한 트위터 이용자가 ‘내 친구가 생리대 대신 신발 깔창을 사용했다더라’고 남긴 트위터 게시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국내 언론사는 해당 게시글을 ‘깔창생리대’ 사건이란 명명과 함께 대대적으로 보도하였고, 정부와 민간은 해당 사건에 대한 ‘긴급대책’으로서 저소득층 여성청소년 대상 무상생리대 사업을 도입‧시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해결책을 요하는 여성청소년의 빈곤 및 성‧재생산 건강 의제는 ‘생리빈곤’의 심각성에 대한 강조와 생리대 지원 사업에 대한 절차적 논의로 수렴되어갔다.
본 논문은 이처럼 여성청소년의 어려움이 ‘생리빈곤’으로 환원되었던 과정과 효과를 젠더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문헌연구, 비판적 담론 분석, 심층면접 방법론을 활용한다. 연구자는 여성청소년 대상 무상생리대 사업과 관련된 정부‧지자체 법령, 기사, 이미지 등을 분석하였고, 2021년 3월 초부터 8월 말까지 무상생리대 사업의 ‘수혜자’ 16명 및 지자체, 기업, NGO, 시민사회단체 등 ‘기타 사업참여자’ 10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 논문의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무상생리대 사업은 정부와 민간 기관 행위자들의 각기 다른 맥락과 필요가 만나는 장이 되었다. 본 논문은 여성가족부 주관 생리대 바우처 사업을 2000년대 이후 여성의제가 저출산 대책으로서의 가족정책을 중심으로 ‘사회서비스’화되어온 맥락 아래 위치시킨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국가기구에 진출한 여성의제는 아이돌봄 등의 가족의제를 중심으로 제도화되었다. 이때 여성/가족 의제는 신공공관리(New Public Management) 행정의 일환으로 도입된 사회서비스 바우처 제도를 통해 각기 구체적인 표적을 지닌 ‘서비스’로 제도화되었다. 2019년 도입된 생리대 바우처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서, 구조적 불평등과 차별보다는 사회서비스를 통해 ‘저발전된 여성’을 지원하는 데 집중하는 기존 여성정책의 흐름을 따랐다. 한편, 민간 기업은 무상생리대 사업을 ‘권리’, ‘돌봄’, ‘역량강화’의 언어와 접합시켰고, 이를 통해 사회변화에 기여하는 기업이자 정부‧지자체보다 ‘세심한’ 돌봄을 제공하는 기관의 위치를 점하고자 했다. NGO는 ‘깔창생리대’ 사건을 기점으로 국제개발에서 글로벌 남반구를 대상으로 진행해오던 생리대 지원 사업을 국내로 확장했다. NGO는 국내 사업 모금광고에 ‘깔창생리대’ 사건을 주요한 광고 소재로 동원하는 가운데, 한국사회 맥락에 걸맞은 새로운 ‘위기’ 재현 전략을 취했다. 민관협치 형태를 띠는 무상생리대 사업의 장에서, 이 같은 정부와 민간의 이질적인 맥락과 필요는 저소득층 여성청소년 대상 생리대 지원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수렴되었다.
둘째, 무상생리대 사업 담론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청소년 의제가 문제화되는 방식 및 여성청소년이 공적 자원을 배분 받을 ‘자격’이 있는 주체로 위치 지어지는 동학을 드러낸다. 무상생리대 사업은 가부장적 온정주의 담론을 통해 ‘위기 소녀’에 대한 가부장적 보호와 구제를 호소하기도 하고, 자유주의적 공정 담론을 통해 청소년기에 ‘같은 출발선’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한 2000년대 이후 여성정책의 주요 화두가 된 저출산 프레임을 경유하여 무상생리대 사업을 여성청소년의 몸이 지닌 (가족/인구 재생산의 측면에서의) ‘생산성’에 대한 투자로 위치시키기도 하고, 성별화되고 계급화된 ‘위기 소녀’의 규범적 섹슈얼리티를 강조하기도 한다. 이처럼 ‘깔창생리대’ 사건은 소위 여성청소년의 생리‘빈곤’ 문제로 일컬어지지만, 그에 대한 개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는 빈곤보다는 여성청소년의 재생산 건강, 청소년기 기회의 평등 및 보호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는 수사가 지배적이었다.
셋째, 생리대 지원을 통해 이들을 ‘보호’한다는 믿음은 도리어 나이,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이 교차하는 복잡다단한 삶의 어려움을 비가시화하는 기제가 된다. 생리대 바우처 같은 분절적 서비스로 여성청소년을 돌본다는 발상은, 이들 삶의 필요와 역량에 대한 총체적인 관점을 갖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편, ‘수혜자’는 여타 사업 참여자들과 마찬가지로 ‘깔창생리대’ 사건이나 무상생리대 사업 광고를 접하고 해석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수혜자’들 역시 무상생리대 사업에서 재현되는 낙인화된 ‘위기 소녀’ 형상을 보고 해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자신이 받는 지원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 참여한 일부 여성들은 생리대 지원을 외면하거나 ‘수혜자’ 범주와 동일시하기를 거부하기도 했고, ‘자격 있는 수혜자’로 여겨지기 위해 지배 담론의 문법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가운데 내면적 갈등을 느끼기도 했다.
본 논문은 정부와 민간에 의해 여성청소년의 월경이 시혜적인 방식으로 문제화되고 ‘보호’되는 작금의 경향에 대한 여성주의 관점의 비판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선택적’ 보호가 복잡다단한 여성청소년의 삶의 어려움과 필요를 생리대로 환원한다는 점, 그로써 여성청소년의 빈곤 및 성‧재생산 건강 의제에 대한 포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해결 모색을 어렵게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같은 본 논문의 분석 내용은 기존의 가출, 성매매를 비롯한 ‘위기’ 경험 중심 여성청소년 담론이 2010년대 중반 ‘생리빈곤’을 중심으로 전환되었던 과정을 포착하고 그 정치적 함의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십대 여성에 대한 정책적‧사회적 개입과 그 함의를 다루어온 여성주의 지식에 기여한다. 또한 본 논문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청소년의 빈곤과 섹슈얼리티가 다루어져온 역사적, 정치적 맥락 속에 무상생리대 사업을 위치 짓고 비판적 질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무상생리대 사업의 연령‧소득기준, 시행절차 등에 집중되었던 기존 여성운동 의제를 확장하는 실천적 의의를 지닌다.


지도교수: 김현미


키워드: 여성청소년 ;  월경 ;  젠더정치 ;  재생산 건강 ;  생명정치 ;  섹슈얼리티 ;  빈곤 ;  소녀 재현 ;  여성정책 ;  여성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