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박사 2024 루인 한국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의 이론화: 퀴어 아카이브 기록물 분석을 중심으로
- 작성일
- 2024.09.05
- 작성자
- 문화인류학과
- 게시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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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 트랜스젠더퀴어와 관련한 기록물 분석을 통해,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을 이론화하였다. 연구자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사회에서 생산된 기록물 속 트랜스젠더퀴어의 재현 양상과 기술 형태를 추적하고,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퀴어 정치의 역사를 확장하고 페미니즘과 경합하는 과정에서 생산하는 정치적 가능성을 탐문하였다. 이 작업은 트랜스젠더퀴어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트랜스젠더퀴어 정치와 페미니즘이 언제나 이미 얽혀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2020년 들어 한국 사회는 트랜스젠더퀴어를 둘러싼 혐오와 배제의 논쟁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었다. 그전까지 트랜스젠더퀴어를 둘러싼 논쟁은 트랜스젠더퀴어 정치에 참여하는 이들과 페미니즘에 참여하는 이들, 혹은 SNS를 사용하는 이들의 의제였다. 하지만 2020년 변희수가 등장하고 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A가 언론사 인터뷰를 진행한 뒤, 트랜스젠더퀴어를 둘러싼 혐오와 지지의 논쟁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이 논쟁은 트랜스젠더퀴어를 둘러싼 의제가 단순히 남성이냐 여성이냐의 문제를 넘어 직업 선택, 교육 기회, 공간 사용의 자격 문제 등으로 확장해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2021년 변희수를 비롯한 유명한 트랜스젠더퀴어가 세상을 떠나면서 혐오와 배제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이에 따라 트랜스젠더퀴어 정치와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많아졌고, 학제에서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트랜스젠더퀴어 정치를 분석하려는 노력이 증대했다. 본 연구는 이런 지형에서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의 이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몸과 젠더 실천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할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이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연구자는 19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생산된 트랜스젠더퀴어의 자전적 기록과 영화 등을 주요 분석 텍스트로 삼았다. 현재의 혐오 지형에 개입하고 페미니즘 정치를 재구성하기 위해 과거 기록을 탐색하는 작업은, 서로 다른 시대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맥락의 차이가 상당히 크게 발생한다. 하지만 과거의 기록은 잊힌, 혹은 철지난 흔적이 아니라 축적된 논의의 단서가 되며 지금은 불가능했던 논의가 이미 실현되었던 구체적 증거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또한 현재의 지형에 개입하기 위해 지금 이 시기에 생산되고 있는 논의에만 집중한다면 갈등과 연대, 혐오와 지지는 당연한 지형처럼 자연화될 위험이 발생한다. 그렇기에 과거 기록부터 현재 기록까지를 탐색하는 작업은 현재 지형을 역사화하는 작업인 동시에, 서로 다른 재현 양식이 논의를 만드는 방식을 탐색하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논의에 개입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본 연구에서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는 텍스트는 잊혔거나 덜 주목받았던 기록인 동시에 누락된 가능성을 통해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의 이론화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본 연구를 위한 연구방법은 문헌 분석이며, 구체적으로 아카이브, 대중문화, 그리고 자서전 분석을 진행하였다. 아카이브는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에서 소장하고 있는 퀴어 인권 운동의 회의록과 자료집 등을 사용하였고, 한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트랜스젠더퀴어의 일기장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아카이브 소장 기록물은 아니지만, 1980년대에 생산된 인터뷰 기록물을 발굴하여 트랜스젠더퀴어의 역사 기록물을 적극 활용하였다. 또한 대중 영화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트랜스젠더퀴어 캐릭터를 통해 재현 양상을 분석하였다. 마지막으로 트랜스젠더퀴어가 직접 쓴 자서전 및 자전적 희곡을 통해 대중적 이해와 개인의 재현 사이에서 발생하는 간극과 틈새를 통해 지배 규범이 작동하는 양상을 포착하였다.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을 이론화하기 위한 본 연구의 주요 발견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80년대의 르뽀 기록과 잡지의 인터뷰를 통해 일차적으로 한국 트랜스젠더퀴어 정치의 역사를 확장하였다. 현재 한국 퀴어 인권 운동의 역사는 1990년대가 그 출발점이며,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를 실천하는 이들에 대한 기록은 1900년대 초반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 편이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는 종종 신문기사의 흔적이 주요 분석 자료이며, 무엇보다 1980년대는 현재까지 거의 분석되지 않고 있는 역사다. 본 연구는 1980년대 게이바를 운영하거나 업소에서 일하는 트랜스젠더퀴어를 깊이 있게 인터뷰를 진행한 기록물을 발굴하였고, 이들 기록물을 통해 한국 트랜스젠더퀴어 인권 운동의 역사를 1980년대로 확장하였다. 또한 1980년대 트랜스젠더퀴어는 퀴어 인권 의제와 관련한 논의가 없었기에 억압을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화를 내고, 정부의 대책을 요구하였으며 무엇보다 외국 여행에 제약이 많았음에도 일본의 트랜스젠더퀴어와 교류하며 국제 연대의 장을 마련했음을 논증하였다. 또한 성전환수술을 경험한 트랜스젠더퀴어는 여성 몸의 다양성에 자신의 몸을 배치하며 지배 규범의 틈새에 파열음을 만들어내었음을 밝혔다. 이 작업은 통치 질서가 트랜스젠더퀴어에게 무관심했던 시기에 그저 죽기만을 기다리는 존재가 되기보다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에너지를 통해 저항 정치의 가능성이었다.
둘째, 1990년대 영화와 일기, 자서전을 분석하며 트랜스젠더퀴어 정치가 당대의 퀴어-페미니즘 정치와 동시대성을 획득하고 있었음을 논증하였을 뿐만 아니라 연대와 범주의 확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음을 밝혔다. 1990년대 인기 있었던 대중 영화이자 페미니즘 비평가가 많이 분석한 <개 같은 날의 오후>는 트랜스젠더퀴어 캐릭터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그동안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본 연구는 이 캐릭터가 페미니즘 저항 정치를 확장하고 차이를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포착했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이것은 공통 경험, 동일한 범주가 연대와 투쟁의 토대가 아니라 소외되고 추방된 존재라는 새로운 범주 창조를 통해 확장할 수 있는 연대의 가능성을 논의하였다. 트랜스젠더퀴어의 일기과 자서전 분석은 트랜스젠더퀴어 정체성 형성에서 중요하다고 가정하는 젠더 경합을 다시 질문하도록 했다. 왜 트랜스젠더퀴어 정체화는 젠더 경합이 핵심이어야 하는가? 본 연구는 일기와 자서전 분석을 통해 젠더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경합에 집중하면서 빈곤과 계급 문제가 누락되는 지점을 문제 삼았고, 빈곤했던 경험이 트랜스젠더퀴어 정체성 구성에 차지하는 의미를 재의미화했다. 이것은 범주 경험의 토대를 심문하는 작업이며,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이 단순히 교차성에 근거한 정치가 아니라 정치적 의제가 누락되는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논의하였다.
셋째, 2000년대 이후 출간된 칼럼, 영화, 자서전, 그리고 자전적 희곡을 분석하며 몸과 범주의 경계를 재해석하였다. 2000년대 중반에 출판된 한무지의 칼럼은 트랜스젠더퀴어에게 수술이 갖는 의미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본 연구는 이 칼럼이 수술을 트랜스젠더퀴어의 조건으로 독해하기보다 수술 과정에서 경험하는 부작용을 몸과 자기 자신 사이의 틈새를 다루는 작업을 재해석하였다. 또한 신유물론의 몸 논의를 빌려와 몸과 '나' 사이의 일체화 규범을 규정하였다. 이것은 트랜스젠더퀴어를 주인공 삼은 영화에서도 몸의 틈새를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몸의 틈새를 봉합해야 할 상처가 아니라 아카이브적으로 축적되는 기록으로 다시 읽어내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마지막으로 2020년대 출판된 트랜스젠더퀴어의 자서전은 잇다른 죽음을 마주한 트랜스젠더퀴어가 노년을 상상하는 방식, 투쟁을 통해 노년을 발명해야 하는 맥락을 분석하였다. 트랜스젠더퀴어의 자전적 희곡은 트랜스젠더퀴어 자긍심을 다룬 작품이며, 문과 두드림을 형상하였다. 이 작품은 경계 구분을 명확한 분리로 이해하기보다 모든 벽에는 문이 있고 그리하여 두드림을 통해 분리된 경계를 연결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것은 몸을 침투가능한 성질로 재발명한 것이며 몸과 나 사이의 틈새를 정치화한 것이다.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은 몸과 '나' 사이의 일체화 규범을 문제 삼으며, 몸을 틈새와 간극의 경합하는 정치로 재편하고 젠더 경험의 토대를 확장한다. 기존 질서에서 계속해서 단절되고 분리된 논의 지형으로 상상하는 작업에 문과 두드림을 기입하는 작업을 통해 분리된 연결, 침투 가능한 물질을 상정하는 이 작업은 오래된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의 새로운 지향이다.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을 이론화한 본 연구는 향후 더 많은 트랜스젠더퀴어 페미니즘 이론을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
핵심되는 말: 트랜스젠더퀴어 정치, 페미니즘, 젠더 이론, 몸 이론, 트랜스젠더퀴어 자서전, 퀴어/트랜스 아카이브, 역사쓰기
지도교수: 김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