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석사 2025 안희제 좋은 책 만들기와 '작가' 되기의 곤란: 인문사회 교양 출판 시장의 가치화 실천
- 작성일
- 2025.03.24
- 작성자
- 문화인류학과
- 게시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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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출판 시장에 대한 경제인류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책과 작가의 개념이 변화하는 장면과 작가 되기에서 일어나는 마찰들을 포착하고자 한 시도이다. 한국에서 출판 시장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경제적 가치로부터 분리하여 이항 대립으로 구성해 낸 출판의 공공성 혹은 사회적 가치에 방점을 찍고, 그러한 가치를 주어진 것으로 상정한 뒤 출판 산업의 부흥이나 불황 극복 혹은 문화정치라는 주제로 수렴시킨다. 그러나 실제 출판 시장에서 다양한 가치들의 대립 구조는 출판의 단계마다, 작가가 처한 상황마다 다르게 실행되고, 결국 작가의 투자 가치를 구성했다. 이에 본 연구는 그러한 가치들의 대립이 구성된 역사적 과정, 현재 출판 시장의 가치화 실천 안에서 그러한 가치들을 실행하는 시장 장치들의 작동을 분석함으로써 변화하는 책과 작가의 개념, 이것이 집약되는 작가 되기의 곤란을 분석하고자 했다.
본 연구를 위해 연구자는 2023년 4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인문사회 분야 종이책의 출판 과정에 대한 현장연구를 수행했다. 이는 편집자, 마케터, MD, 1인출판사 대표, 작가, 문화부 기자 등을 포함하는 30인과의 심층면담 및 이를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한 자료 조사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참여관찰, 오프라인 행사 참여, 강의 수강 등을 포함했다. 이러한 과정은 연구자 본인이 작가라는 위치에서 수행되었다. 이때 서지사항이나 출판된 문장들, 공개적 활동 등으로 인한 지표성(indexicality)을 고려하여, 인류학적 픽션을 연구 방법으로 활용했다.
현재 한국 출판 시장의 가치화 실천에서 생산되고 있는 것은 발전주의적·국가주의적 국민 주체와 민주화 운동을 중심으로 이에 대항한 민중 주체가 출판의 문화산업화를 통해 착종된 출판인 주체다. 군부독재 시기 출판에 대한 검열체제의 명분이 건전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으로서의 공익이었다면, 여기에 맞선 금서 출판의 명분은 반독재와 민주주의 수립으로서의 공익이었다. 제도적 민주화 이후 출판의 문화산업화는 지원체제로 출판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었고, 도서정가제는 출판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와 대립되는 공익이나 공공성으로 구성했다. 이 대립이 출판 산업의 투자 가치의 근거로 동원되면서 사회비판 의식을 공익적 콘텐츠로 구성하여 투자 가치를 상승시키는 출판인 주체가 만들어졌다. 정치적·사회적·기술적 조건의 변화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책이 교양서로 팔릴 수 있게 되고, 이는 개인적인 일상을 소재로 한 에세이 출판이 유행이 된 상황에서 페미니즘 리부트와 연결되며 에세이 형식의 인문사회 교양서 출판 기획이라는 트렌드로 이어졌다. 그렇게 에세이도 이론서도 아닌 인문사회 교양서, 문인도 지식인도 아닌 형태의 인문사회 교양 작가가 탄생했다.
출판 시장의 변화 속에서 책의 가치가 구성되고 실행되는 방식, 그리고 ‘좋은 책’의 개념 또한 달라졌다. 책은 그 자체로 완결된 상품이 아니라, 작가가 계속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사물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출판 기획은 작가, 편집자, 출판사보다 독자의 수요를 고려하고, 소셜 미디어를 활용하여 사람과 책의 가치를 계산하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기획서를 작성하고, 이를 집행하는 실제 출판의 과정은 금전적 비용, 물성, 매력, 발견성, 시의성, 신뢰성이라는 여섯 개의 가치화의 등록부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을 결정적으로 좋은 책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작가다. 출판이 쇼 비즈니스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작가는 소셜 미디어와 북토크 등을 통해 사람들을 직접 만나며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키며 살아가는 피투자자 주체다. 이때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자신의 가치이자 상품으로 삼는 인문사회 교양 작가들은 관심 경제에서 관심의 축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력과 출판 시장에서 신용의 축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믿음을 대립하는 가치로 경험한다. 작가들은 여기서 기인하는 모순과 불안을 관리하고자 인스타그램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독자 및 팔로워들과 소통하고, 북토크를 통해 직접 만나서 더욱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고, 글쓰기 모임을 열어서 수익을 창출하며 독자를 관리한다. 이렇게 다양한 시장 장치들이 맞물리는 중심 지점에서 작가들이 가치화의 연결망을 잠시나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결과적으로 본 연구는 인문사회 교양 출판 시장을 중심으로 출판 시장 장치들과 그 작동 방식의 변화를 책과 작가, 특히 작가의 개념 변화를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했다. 출판 산업의 만성화된 점진적 위기와 가치화의 역동성 사이에서, 본 연구는 출판 산업에 대한 기존의 거시적 논의와 정책 논의의 한계를 넘어 출판 시장에서 발견되는 주체성의 변화를 포착하고자 했다. 연구자는 현재 출판 시장에서 지식기반경제를 매개로 정동노동과 피투자자 주체성이 착종되어 작동하며 책과 작가를 재개념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를 특히 가치화와 투자라는 틀을 통해 작가 되기 과정을 중심으로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 장치들은 언제나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으며,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찰과 긴장들은 거시적 관점에서는 쉽게 파악하기 힘든 주체성의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핵심되는 말: 가치화, 시장 장치, 정동노동, 정동 자본주의, 계산, 출판 시장, 출판 산업, 주체성, 작가, 인문사회
지도교수: 조문영